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지루해(Boring)!"

 

 간신히 영국의 끔찍한 실업률을 극복하고 재취업에 성공한 지 3개월이 지난 존의 하루는 저 한 마디로 점철되어있었다. 아니, 그가 말끝마다 빼먹지 않는 '이상(That's all).'도 포함하면 세 마디가 맞을 것이다.
 이쯤에서 S.O.D 편집장인 셜록 홈즈의 어시스턴트 존 왓슨의 일과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존의 하루는 셜록 홈즈가 하루 종일 들이킬 만큼의 스타벅스 커피를 아침 출근 인파를 뚫고 이고 지고 사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셜록이 식은 커피도 잘 마신다는 것이었다. 그가 만약 막 끓여낸 커피 아니면 절대 마시지 않는 상사였다면 더욱 피곤해지는 건 존뿐이니까 그건 무척 다행이었다. 그에 더해 존은 런던에 출판되는 일간지 전부를 하나하나 통독하며 셜록 홈즈에게 사건의 낌새가 느껴지는 기사를 하나하나 읽어주어야 했다. 단순히 서류 정리나 단순 작업을 예상하고 이 직종에 뛰어든 존에게는 컬쳐 쇼크나 다름없을 만큼 피터지는 일거리-말 그대로 피가 터지는 경우도 많았다-가 매일같이 쏟아졌다.
 아침 일간지를 빠짐없이 확인하고 나면 그는 혼자서, 또는 존을 대동하고 사건 취재를 위해 외근을 나간다. 석간 신문을 미리 사놓는 것은 도노반의 몫이다. 물론 거기서 사건이 될 만한 꺼리를 추려내어 읽어주는 것은 역시 존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존이 기사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셜록은 '지루해'란 말을 연신 내뱉었다. 너무 뻔한 사건이어서 멍청한 경찰들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거였다. 물론 자신이 그 사건에 손대면 해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단축되겠지만, 하고 그는 일말의 자부심 어린 어조로 덧붙였다. (그리고 존은 어지간히 잘난 척 하길 좋아하는군, 이라고 생각했다. 사건 현장에 함께 가서 그의 능력이 어떤지 익히 눈으로 확인했던 존이었지만 그가 사춘기 소년처럼 뻐기는 데에는 도저히 웃지 않고 배겨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찮은 사건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런던 경찰청과의 관계가 더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존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런던 경찰청으로 접수되는 사건 중 적어도 5퍼센트는 셜록의 자문을 거쳐 해결되었으나 최종 사건 개요 발표에는 언제나 셜록의 이름은 빠져 있다는 것도 말이다.
 도노반의 업무는 어찌 보면 존보다 단순한 것이었지만 바쁘기는 엄청 바빴다. 셜록 홈즈가 사건 취재에서 녹음해온 것, 수집한 자료 등을 전부 문서 자료로 환원시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면 그 자료를 휘하의 각종 부서로 분류하여 내려보내는 것까지가 그녀의 업무였다. 또한 셜록 홈즈가 미처 생각지 못한 그 외의 자료를 검색하는 것까지 그녀는 군말 않고 해냈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단 한 차례의 누락도 없이 다뤄내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었다. 주변에서는 일반 어시스턴트일 때부터 그녀의 업무가 변함이 없는 것에 대해 신입인 존 왓슨에게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선임이었던 그렉 레스트레이드가 맡고 있던 셜록 홈즈의 뒷치닥거리 업무가 존에게 그대로 승계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셜록은 그런 루머를 단 한 번의 발언으로 일축했다.

 

 "사람은 다 자기에게 맞는 일이 있지."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공식적인 셜록 전용 보모가 된 존은 오늘 아침에도 졸린 눈을 부비고 커피 한 판을 운반한 후 지금은 셜록과 마주보고 앉아서-사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셜록은 편집장실 한쪽에 놓인 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기 때문에-기사를 들춰보고 있는 중이었다.

 

 "런던 근교 주택가에 실종 아동-"
 "지루해."
 "연쇄 빈집털이범-"
 "식상해."

 

 이런 대화가 약 30분 가량 이어졌고 존은 더이상 읽을 기사가 없다는 이유로 펄럭 소리를 내며 신문지를 덮어 한쪽으로 던져놓았다. 셜록은 '으으으'하는 괴상한 신음소리를 지르더니 벌떡 일어나서 소파 위에서 방방 뛰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허리춤에 차고 있던 리볼버를 꺼내서 레몬색 스프레이로 그린 스마일 마크에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지루해! 지루하다고!"

 

 총신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탄창에 꽉 차있던 총탄을 어느새 다 썼다는 신호였다. 몇 번 방아쇠를 더 당기던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총을 한 구석에 내던지고는 존을 향해 휙 돌아서면서 소리쳤다.

 

 "아니, 런던이 이렇게 지루한 도시였나? 어째 쓸 만한 범죄가 하나도 없군 그래!"

 

 편집장의 신경질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존은 공연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편집장님이 원하신다고 해서 범죄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요! 게다가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닙니까! 존은 셜록의 윤리 관념이 제대로 된 것이 맞는지 한 번 저 인간의 머릿속을 해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면 편집장의 심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납치라던가 살인이라도 저질러야 하는 건가?
 존은 피곤한 머리로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처음에 마이크 스탬포드가 이 일을 얻기 위해 지원자들이 사람이라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그제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존이 웃는 것을 본 셜록이 물었다.

 

 "왜 웃는 거지?"
 "아...조금 웃겨서요."
 "뭐가?"

 

 존이 머뭇거리다 둘러대었다.

 

 "범죄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쓸만한 범죄가 없다'니, 범죄 행위를 옹호라도 하시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말하다 보니 깊은 곳의 본심이 드러나버렸다. 그의 얼굴에 너무 노골적으로 비웃는 기색이 드러난 듯, 셜록은 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는 존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을 정확히 따라지어보였다. 그건 마치 존을 조롱하는 듯 보였다. 셜록은 잠시 그런 표정으로 존을 응시하다가 순식간에 냉랭한 표정으로 싹 변해 웃음기라곤 얼굴에서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셜록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존 왓슨, 자네는 범죄가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셜록은 구부정한 자세를 고쳐세우고 가운을 벗어들어 옷걸이에 걸며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범죄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일어난다는 거야. 그게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말이야. 왜인지 알아? 아, 원래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자네가 알 턱이 없나?"

 

 냉소가 섞인 어조로 셜록이 구겨진 와이셔츠의 칼라를 매만지며 말했다.

 

 "왜냐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꼭 있게 마련이거든. 이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했을 때, 사람들이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아는 편이 그들에게 유익할까, 아니면 모르는 편이 유익할까? 확실히 모르는 편이 한심할 정도로 부주의한 일반인들의 정신건강상으로는 유익하겠지. 그들의 신경은 그래뵈도 퍽 예민한 편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자네도 뇌가 있으면 생각을 할 수 있겠지? 범죄 사실을 아는 것이 그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일부 게으른 경찰들의 방심과 태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속사포로 쏘아붙인 셜록 홈즈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진회색 코트를 집어들며 느닷없는 비난에 당황한 존의 꼴사나운 표정을 흘깃 하고 바라보았다.

 

 "물론 자네의 뇌가 임무를 방기하고 펑펑 놀고있지 않다면야 그 정도 쯤이야 능히 짐작할 수 있겠지?"

 

 셜록은 코트를 걸치고 편집장실을 나가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오늘은 내근일세. 이상(That's all)."

 

*

 

 셜록의 냉대에 풀이 죽은 존은 형사 사건부의 에디팅 룸으로 향했다. 때마침 그렉 레스트레이드는 과학 수사국에서 보내온 증거 자료 분석문을 읽는 중이었다. 레스트레이드는 S.O.D.가 창간된 이래로 3개월 전까지 셜록의 어시스턴트 역할을 감당하면서 쌓아온 인내심과 관용으로 편집장인 셜록의 등쌀에 시달리는 부하 직원들을 다독이는 완충제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존이 문을 열고 에디팅 룸으로 들어서자마자 레스트레이드는 분석문에서 고개를 돌리는 시늉도 하지 않고 눈을 아래로 고정시킨 채 말했다.

 

 "내 관할 아님(Not my division)."
 "레스트레이드, 저예요."

 

 타 부서에서 떠맡기는 일거리가 아니란 걸 알게 되자 레스트레이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사실상 직원 관리와 일 분배, 그리고 사건의 낌새를 찾아 싸돌아다니는 것 이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이름만 편집장인 셜록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총괄하는 레스트레이드였으니만큼 형사과 외의 타 부서에서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사실상 일 떠맏기기-가 많았으므로 레스트레이드는 가끔 아무 뜻도 없는 이면지를 붙잡고 바쁜 척 하기가 일쑤였다. 존은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애써 밝은 척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풀이 죽은 기색의 존을 보고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왜 찾아왔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레스트레이드는 언젠간 존이 이런 일로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를 슬쩍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그는 서류를 잠시 내려놓고 편한 자세로 앉으며 경청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존은 작은 의자를 레스트레이드의 맞은편에 놓고 풀썩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후, 하고 짧은 한숨을 쉬며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그에게 레스트레이드가 상냥하게 웃으며 응? 하고 말을 재촉했다.
 존의 의기소침한 투로 말했다.

 

 "혼났어요."
 "뭐, 셜록한테?"
 "그럼 달리 누구한테 혼나겠어요."

 

 불쌍할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존의 어깨를 다독이며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오, 존.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셜록은 종종 히스테리를 부릴 때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니요, 이번엔 제가 잘못한 거였어요."

 

 존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레스트레이드는 존에게 물었다.

 

 "그래서 존, 지금 걱정되는 게 어떤거야? 직장에서 해고될까봐 그러는 거야?"
 
 존이 레스트레이드의 말을 듣고 움찔 하더니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 가능성을 잊고 있었네요..."

 

 레스트레이드는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존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자네도 알겠지만 셜록이 그런 일 가지고 사람을 자를 리 없잖나."

 

 사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셜록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존은 절대로 잘릴 리 없다는 것을 레스트레이드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정년 퇴임 연령이 지나도 계속 자기 옆에 두려고 하지 않을까? 문제는 존이 자신이 총애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레스트레이드의 말에 다시금 표정이 풀린 존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존이 레스트레이드를 보며 떠듬떠듬 물었다.

 

 "레스트레이드 씨는 역시 셜록에 대해 잘 아시죠?"

 

 레스트레이드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선 대답했다.

 

 "아무래도. 5년 전부터 알던 사이니까 그럴 법도 하겠지."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처음 보았을 때를 잠시 회상하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아. 그는 나에 대해서 속속들히 잘 알고 있겠지만 말야. 워낙에 눈썰미-이 말을 하며 레스트레이드는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좋은 친구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찌 됐든 말야, 존."

 

 그렇게 말하며 레스트레이드는 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문득 그의 짧은 금발 머리가 덮인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귀여운 사내를 고민하게 만드는 셜록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약간의 질투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레스트레이드는 쾌활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심란해하지 말라고. 기삿거리가 없어 예민해진 것 뿐일 거야. 언젠가는 그도 철이 들겠지-그리고, 내 생각에 그는 이미 화가 풀렸을 거 같군."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존이 애타게 물었다. 레스트레이드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그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네를 많이 아낀다네. 안 그런가, 셜록?"

 

 레스트레이드가 말하며 존의 뒤쪽을 웃으며 쳐다보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존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문가에 셜록이 기대서서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