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짐/중편/파이트클럽AU

 

 언제, 어떻게 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자신은 평소대로 하나뿐인 군청색의 실내복을 입고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그러나 반듯한 자세와는 별개로 머릿속은 마약을 오버도스한 듯 엉망진창이다.
 이게 모두 간밤에 좋지 않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것은,
 존.
 존이 누군가의 아래에 깔려서 날개꺾인 새처럼 버둥대며 삽입당하는 모습.
 존이 애무를 받으며 목을 뒤로 젖히며 신음하는 모습.
 존과 누군가의 몸이 뒤엉키고 깊고 거칠게 키스하는 모습.
 존이 절정에 다다르고-
 묘하게 사실적인 환각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급하게 몸을 일으키고 세수를 한 후, 나는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짐의 방 문 앞을 지나치며 그가 잠에서 깼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그의 방문은 닫혀 있다. 한 번도 닫힌 적이 없었는데.
 짐의 기척을 확인하고 그가 없다는 것을 안 후에 문을 열어보았다. 침대를 비롯해서 방 안은 난장판이다. 굳이 정황증거를 분석하지 않아도 진하게 풍겨오는 정액의 냄새와 방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져있는-게다가 설명하기 싫은 액체로 젖어있는-콘돔을 보면 격렬한 정사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기분이 나빠진 채로 부엌에 갔다. 차를 끓이려고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찾았다. 마침 뒤에서 부스럭 하고 인기척이 들린다.

 

 "끔찍한 꿈을 꿨어, 제임스."
 "나도 어젯밤 일이 꿈 같아."

 

 당연히 짐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인데 대답한 사람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존, 대체 여긴 웬일이야?"

 

 존이 먼저 와서 차를 끓인 듯 그가 들고 있는 찻잔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의 물음에 존은 입에 갖다댔던 찻잔을 내려놓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물었다.

 

 "뭐?"
 "내 집에서 뭐하는 거냐고?"

 

 아니, 질문은 사실상 헛된 것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그가 짐과 섹스한 그 남자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한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돌렸다.
 존은 찡그린 나의 얼굴을 보고 의자에 기대두었던 지팡이를 찾아 그것을 짚고 일어서며 'fuck...'이라고 하려다가 f까지만 발음하고 나가버렸다. 평소보다 더욱 비틀거리며 존이 힘들게 나가자 짐이 기다렸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들어와서 나에게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셜록, 저 병아리 네 친구라며? 처녀라서 뚫는 맛도 있고, 침대에서 존나 귀엽던데?"

 

*

 

 그러니까 내가 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짐이 우연히 도청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짐은 낄낄대며 나에게 그 도청 기록을 다시 재생해 주기도 했다.

 

 "저기 있잖아, 셜록...나 방금..."

 

 존은 미약하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나한테 있는 수면제 몽땅 삼켰어. 왕창 삼켰지."

 

 분명 침대에 누워서 전화를 걸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절뚝이는 걸음으로 비틀거리는 존을 상상했다.

 

 "진짜 죽으려고 약을 먹은 건 아냐. 음...이런 말 해도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 너랑 같이 사건 해결하고 다닐 때는 다리도 안 아팠어. 정말 네 말이 맞더라고, 셜록...네가 정말 내 다리를 고쳤어...근데 갑자기 너는 사라지고...죽은 줄 알았는데 전화해보니까 멀쩡히 살아었있구나..."

 

 그의 목소리가 흐려진다. 그가 짐짓 쾌활한 어조로 말한다.

 

 "나 죽는 거 중계방송할까?"

 

 목소리가 아주 약간, 느려졌다.

 

 "나 죽은 뒤에 내 혼령하고 통화해 볼래?"

 

 약 기운에 맛이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숨 끊어지는 소리 들어봤어?"

 

 짐에 따르면 짐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그 전화를 연결한 다음, 발신지를 추적하며 주소를 알아낸 후 존의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짐 모리어티가 말이다.

 

*

 

 "...숨이 끊어질 땐 어떨까?"

 

 존은 멍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붙잡고 말을 하고 있었다.

 

 "숨 넘어가는 소리가 내가 전쟁터에서 봤던 죽어가는 사람들처럼...그렇게 으시시할까?..."

 

 존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짐 모리어티의 귓가에 울린다.

 

 "이제 내 숨이 끊어진다...10...9...8..."

 

 짐은 키득키득 웃으며 존이 살고 있는 제대자 전용 숙소의 계단을 빠르게 걸어올라갔다.

 

 "5...4...3...잠깐만, 누가 왔- 이런, 빨리도 도착했네. 그런데 내가 널 불렀던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자코 날 따라오라고."

 

 약기운에 취한 존은 짐이 이끄는 대로 비틀비틀 끌려갔다. 존이 짐에게 거의 쓰러질 듯 기댄 채로 간신히 계단을 다 내려왔고, 존은 건물 입구 계단을 내려오면서 크게 한 번 휘청였다. 짐이 존을 부축하자, 존은 짐에게 매달려 어눌한 발음으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난 지금 잠들면 황천행이야..."

 

 존이 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서툴게 키스하며 말했다.

 

 "잠 못 들게 해줘, 밤새도록..."

 

*

 

 "꼭 홀린 것 같다니까."

 

 그렇게 밤의 무용담을 펼쳐놓던 짐은 낄낄 웃어댔다. 늑대같은 녀석...나는 무표정으로 티스푼으로 밀크티를 휘휘 저었다.
 짐이 갑자기 눈빛을 진지하게 하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도 같이 잤지?"
 "안 잤어."
 "한 번도?"
 "없어."
 "관심 없어?"
 "천만에, 전혀!"

 

 나는 엄청 화가 났다.

 

 "정말? 솔직히 말해."
 "정말이야."

 

 이거 점점 더 열 뻗치는 군.

 

 "쟨 다루기 힘들어. 가까이 하지마."

 

 그는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셜록, 잠깐 얘기하자고. 거기 앉아봐."

 

 그가 드물게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존에게 나에 대해 말하지마."
 "내가 뭐하러-"
 "누구한테든 내 얘기를 함부로 하고 다니면, 우린 끝이야."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약속해 줘."
 "좋아."
 "약속하지?"
 "약속할게."
 "약속해?"
 "약속한대두."

 

 끈질기게 손을 내밀어오며 마치 맹세의 증표라도 되는 듯 악수를 요구하던 짐은 내가 그의 손에 내 손을 갖다대자 그것을 재빠르게 잡아 흔들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 번 약속했어."

 

*

 

 그 날 사건 해결은 좀 미루더라도, 존이 죽는 걸 지켜봐 줄 걸 그랬다.

 

 "아! 아! 아앗! 하읏, 더, 더어-"

 

 어찌나 짐승처럼 해대는지 존은 신음소리를 내느라 항상 목이 다 쉬어버린다. 언제나 거칠게 섹스하는 터라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망가져버린 듯 짐의 침대가 그들이 움직임에 따라 삐걱삐걱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짐의 방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방으로 옮기면 저 소리가 안 들리겠지만 난 방을 옮기지 않았다.
 하루는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고 있는데 마침 방문을 열던 짐과 마주쳤다. 짐이 물었다.

 

 "뭐하는 거야?"
 "물 좀 마시려고."

 

 땀에 젖은 짐이 안쪽의 침대를 쓱 가리켰다. 침대에 엎드려, 하얀 엉덩이를 내보인채 사정 직전에 몰려 발개진 볼로 끙끙대는 존이 보인다. 짐이 다소 짖궂어보이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네가 마무리할래?"
 "됐어, 사양할래."

 

 존이 힘겹게 고개를 쳐들며 짐에게 물었다.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닥쳐."

 

 짐이 존에게 말하며 방문을 쾅 닫았다.

 

*

 

 오랜만에 경시청에 갔는데, 레스트레이드가 따라붙어서 말했다.

 

 "너희 집에 난 화재 사건의 단서가 잡혔어."
 "그래요?"

 

 현재 짐의 집에서 내 집처럼 편하게 살고 있는 나는 그 전의 집에 신경을 쓰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저 화재 보험금이나 좀 탔으면 싶었다.

 

 "너희 집 자물쇠에 누가 프레온 가스를 뿌리고 끌로 내리친거 알아?"
 "제가 알 턱이 없죠."
 "금시초문인가?"
 "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다이너마이트에 말이지, 옥실산염 잔여물이 남아있었다고 하더군. 이해 되나?"
 "사제 폭탄이라는 소리군요."
 "셜록, 손이..."

 

 손이 떨렸다. 다른 손으로 떨리는 손을 잡고 깍지를 낀 후 말했다.

 

 "죄송합니다. 충격이 커서..."

 

 레스트레이드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잠깐 나를 보더니 다시 서류에 고개를 돌렸다.

 

 "화재 감식반 말로는 그 폭탄을 설치한 자가 가스를 누출시켰을 거래."
 "가스가 기폭제였군요. 정말 황당하네요."
 "셜록, 혹시 폭탄 만들 줄 아는 사람 중 원수진 사람은 없나?"
 "딱히 폭탄 제조에 특화된 사람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하지만 옥실산염 잔여물이 남을 정도로 허술한 폭탄이라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거겠죠. 아시다시피, 인터넷으로는 뭐든 찾아볼 수 있지요. 그리고 경감님도 알다시피 저는 범죄자 한 둘이랑 원수가 진 것이 아니잖습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존과 짐은 섹스할 때만 찰떡같이 붙어있다가 따로 놀기 일쑤였다. 존은 짐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풀려는 듯 했고, 짐은 존을 셜록에게 맡겨놓은 채 방 안에 틀어박혀서 비밀스런 일을 했다.
 짐은 전처럼 자신의 일에 나를 끌어들이려 애쓰지 않았고, 나 또한 레스트레이드와 사건을 해결하느라 바빴다. 존은 종종 나를 따라 사건 현장에 오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처럼 사건 현장에는 꼭 나와 같이 가게 되었다.

 

*

 

 비어있던 맨션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천재 해커 소그룹에서 봤던 펑크족처럼 꾸민, 또는 전형적인 너드(nerd)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나, 예전에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곳에서 본 우스꽝스러운 비실이 꼬마가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그만의 군대라도 조직한 듯 종종 그들에게 뭔가 비밀스러우면서도 심각한 지시를 내리고,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그 지시를 이행하는 것에 힘썼다. 무슨 일인지는 궁금했으나 어쩐지 짐과 따로 이야기할 시간이 줄어들었고, 최근 들어 심각한 테러 사건이나 국가의 중요 건물 침입 사건이 잦아진 터라 그 사건을 수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침입당한 건물 중 하나는 옛 동창인 세바스찬이 꽤 높은 지위에 올라 있는 거대 은행이었다. 그의 의뢰로 죽은 은행원의 사인을 밝히다가 존과 함께 중국의 마피아들에게 죽을 뻔 하기도 했다.
 또 예전에 배후 불명의 택시 기사의 무차별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본 핑크색 아이폰을 복제한 아이폰으로 전달되어오는 사건들은 시간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짐에게 시간을 할애할래야 할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인질들까지 잡혀있다는 사실이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집중력을 흩어놓았다. 사건은 무사히 해결했지만 한 번은 인질로 잡힌 노인이 인질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바람에 인질이 잡혀있던 장소는 폭파되고, 무려 열두명이나 사망했다.
 네 번의 사건이 끝나고, 한 동안 그 망할 핑크색 아이폰은 잠잠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자, 짐과 나의 집은 전에는 보지 못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어있던 큰 방에는 마치 텔레비전에 종종 나오는 수사국의 본부처럼 컴퓨터, 대형 스크린 등의 첨단 기계장치로 가득했다. 북적대는 사람들의 말소리, 망할 괴짜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웅성거리는 소리와 시끄러운 전자음에 질려 귀를 막고 뛰쳐나온 나는 짐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는 잘 만났다는 듯이 그를 잡고 말했다.

 

 "집에 대체 어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거야?"
 "셜록."
 "무슨 일을 꾸미든, 내게 말이라도 해줬어야지!"

 

 나는 방 벽을 치며 소리쳤다.

 

 "젠장!"

 

 짐이 다리를 건들거리며 말했다.

 

 "뭘 원해? 보고서라도 쓸까?"

 

 나는 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짐의 옷차림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을 눈치챘다. 고급스런 은회색 수트, 상당한 가격대임이 분명한 넥타이, 그리고 백금제 넥타이 핀, 분명 돈 꽤나 썼을 법한 수제화...

 짐은 나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 일은 각자 알아서 끼는 거야."
 "미리 말해 달란 말이야!"
 "뭐든지 말해주길 기다리고만 있지 마. "

 

 나는 그의 생각 외로 냉정한 어조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셜록, 네가 알기를 원했다면 언제든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 있었어. 왜냐? 너는 네가 말했듯이 빌어먹게도 '똑똑'하니까. 하지만 너는 관심조차 없었잖아? 그동안 내가 여기저기 끌고 갔던 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정신 상태가 아니었던 나였다. 이런, 이것도 내 잘못이다. 그렇다. 내가 짐의 일에 대해 알지 못했던 건 내 잘못이다. 내 부주의다.
 결국엔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고야 말았다.

 

 "젠장, 지겨워! 너도, 저 병신들도, 존도!"

 

 그러고도 아직 미진한 느낌이 들어 한 번 더 소리쳤다.

 

 "다 신물난다고!"

 

 짐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 차갑게 대했냐는 듯 부드럽게 토닥인다.

 

 "알았어, 알았다고."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는 나를 다독였다. 
 그러고는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왜 네 집을 폭파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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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