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인/레드존제인

 

 

 리스본은 휘하 팀원들에게 당분간은 제인이 함께 수사과정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나, 언제든지 그가 회복하는 대로 팀에 복귀하게 될 것임을 전했다. 제인의 외적 상태는 다른 팀원들도 돌아가면서 병문안을 갔다 오면서 알고 있었으므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무겁게 가라앉은 우울감을 떨쳐내기에는 제인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다.
 평소에는 장난삼아 월급 도둑이라거나 게으름뱅이라고 놀리기도 했었지만 그런 농담이 무색할 정도로, 제인이 없어서 생기는 피해는 컸다. 지금까지 약 두 주가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제인이 자리를 비운 것에 불과했지만, 수사의 진척 속도가 느린 것은 물론이고 팀 내 분위기도 활발하지 못했다. 특히 조는 누가 봐도 알 만큼의 다크 오오라를 풀풀 날리고 있었다. 말수도 줄어들고 범인의 심문도 더욱 가혹해져, 릭스비가 이제 조가 '아이스맨'에서 '블리자드맨'으로 진화했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웬만하면 각 부서의 행동 양태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루터 웨인라이트도 넌지시 우려의 의사를 표명할 정도였으니, 짐작할 만 할 것이다.
 
 조는 근무 외 시간에는 부지런히 병원에 들락날락하며 제인을 수발했다. 제인의 외상은 회복된 지 오래여서 제인을 만나려면 정신 병동 쪽으로 가야만 했다.
 조는 사랑하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곧바로 내칠 만한 냉혈한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희망을 갖고 제인에게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모든 외부 자극에 무감각으로 일관하는 증세를 보였던 크리스티나와는 다르게 제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멍한 눈빛에 말이라곤 한 마디도 안했지만 조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인용 병실에 들어간 조는 이맘때쯤이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창 밖을 바라보거나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제인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준 건 텅 빈 시트뿐이었다. 조가 막 간호사 소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병실 안쪽의 화장실 문이 열렸다.

 

 "제인...?"

 

 문을 열고 나온 이는 패트릭 제인이었다. 납치되기 이전처럼 구겨진 양복을 나름대로 말쑥하게 차려입고는 싱긋 미소 지으며 조를 보고 있었다.
 조는 평소의 그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벙벙한 표정으로 제인을 쳐다보았다.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조가 더듬거리며 제인에게 말했다.

 

 "제인 맞아요?"

 

 제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지 누구야. 그런데 말야, 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

 

 제인은 곧바로 CBI 수사본부로 향했고, 리스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환대를 받았다. 마침 다음날이 휴일이라는 경사까지 겹쳐, 다들 근처의 술집으로 향했다.
 평소에 술을 꺼려하던 리스본도 '오늘만큼은 마셔야지!'라고 호쾌하게 외치며 위스키 병을 잔에 기울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소파에 누워 뒹굴 거린다는 둥 온갖 잔소리를 도맡아 받았던 제인으로서는 즐겁기도 했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와아~이런 대접은 처음인 것 같네."
 "제인이 복귀했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죠!"

 

 반 펠트가 오랜만에 경쾌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러니까 내가 13일 동안 아무 것도 못하는 멍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방금 회복됐다는 거야?"
 "맞아요."

 

 릭스비가 리스본과 짝짜꿍이 되어 꽉 찬 위스키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제인의 말에 맞장구를 친 그는 리스본의 부추김에 못이긴 척 하며 그 많고 독한 위스키를 입 안에 다 털어넣었다.
 
 "릭스비랑 모두들, 오늘 심하게 달리는데?"

 

 제인이 소곤거렸지만 아무도 그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는 듯 했다. 제인은 난처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지만 모두들 웬일인지 너무나 흥겨워했기 때문에 딱히 딴죽을 걸지 않기로 했다.

 

*

 

 다들 만취한 상태였지만 어떻게든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눈치를 봐가며 슬슬 음주량을 조절한 제인이 가장 멀쩡한 상태였고, 흐느적대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눈의 초점이 살짝 풀린 것 같은 조를 데리고 조의 집으로 운전해가기 시작했다.

 

 "조 괜찮아?"
 "...네."

 

 반 박자 느린 대답에 제인이 웃음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다들 너무 흥분했나봐."
 "아녜요."

 

 조가 대답했다. 뭔가 입을 우물거리며 더 말하려는 기색에 제인은 기다렸다.

 

 "제인이 돌아왔잖습니까."
 "그래, 그래."
 "돌아왔어요."
 "그래, 나 돌아왔어."
 "제인, 다신 떠나지 마세요."
 "응, 안 떠날게. 이제 됐지? 이제 도착했는데 얼른 내려서 들어가자."

 

 제인이 웅얼거리는 조에게 얼른 대꾸한 후, 자신과 조의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 쪽 문을 열려는데 조가 갑자기 제인의 팔을 꽉 잡았다.

 

 "왜 그래 조?"

 

 조는 아무 말 없이 제인을 강하게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추었다. 제인은 깜짝 놀라서 잠깐 움찔했지만 동조해주었다. 차 안의 차가운 밤 공기와 함께 술 때문에 달아오른 열기가 섞여 서로의 입 속에서 마구 엉겼다. 다소 거칠다 싶을 정도로 파고들어오는 혀 때문에 제인은 서서히 몽롱해져갔다. 문제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멈추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일까.
 제기랄, 조는 정말이지 키스를 너무나 잘 했다.
 조는 제인이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에 그를 놔줬다. 제인은 눈이 풀린 채 헐떡이며 좌석에 기대었고 입가에 줄줄 흘러내린 타액을 닦았다. 제인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조, 이제 들어가자."

 

 조를 부축해서 침대에 거의 내던지듯이 내려놓은 제인은 조의 신발을 일단 벗기고 현관에 놓고 온 뒤,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하루였다. 일어나보니 난데없는 정신 병동의 입원실인 데다가 CBI에 돌아와보니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듯 한 환영을 해주는 팀원들 때문에 정신없이 끌려 다녔지만 내일은 반드시 진상을 알아내겠다 다짐하며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조가 대자로 뻗어있는 것을 본 제인이 오늘은 소파 신세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는 찰나 조가 언제 일어났는지 살짝 비켜서 제인이 누울 자리를 내주며 제인에게 말했다.

 

 "이리 와요."

 

 여전히 취한 듯 했지만 약간은 맑아진 목소리였다. 제인은 살짝 웃으며 조의 옆에 누웠다.

 

 "있지 조."
 "네."
 "너 키스 진짜 잘하더라."

 

 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인은 약간 짓궂은 심정으로 조에게 말했다.

 

 "한 번 더 해주면 안되?"

 

 조는 그새 잠이 든 듯 잠시 반응이 없었다. 제인이 잠이 들었나봐, 라고 생각할 때 즈음 조의 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고개를 돌린 제인에게 부드럽게 손을 뻗어 제인의 얼굴을 끌어당겨 키스했다. 당황해서 조에게 리드 당했던 아까와는 달리 제인도 적극적으로 조의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어 조의 혀를 간질였다. 둘은 천천히 서로의 입술을 즐겼다. 길고 달콤한 키스. 느긋하게, 미온수를 욕조에 받아놓고 참방참방 물장구를 치며 노는 기분의 키스.
 쵹 하는 젖은 소리와 함께 입술을 뗀 그들은 기분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키스의 여운에 젖어서 침실에 깔린 정적마저 즐기고 있을 때 조가 문득 입을 열어 나직하게 말했다.

 

 "...제인."
 "응?"
 "제인이 어떤 일을 당했든 난 상관없어요. 난 정말로 제인이 좋아..."

 

 처음에는 그저 술에 취한 남자의 고백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려던 제인은 조의 말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는 그에게 말했다.

 

 "어떤 일을 당했든...이라니? 내가 뭐라도 당했어?"

 

 제인은 까무룩 잠들어버린 조를 살짝 흔들며 대답을 재촉했다.

 

 "대체 무슨 일인거야?"
 "...레드...존."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