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인/레드존제인

 

 

 "제인..."

 

 조가 말했다.
 제인은 반쯤은 기대되는, 반쯤은 실망한 기분으로 조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헤프게 굴지 마십쇼."

 

 과연, CBI 최고의 인격 살인마라고 불리는 킴벌 조의 촌철살인같은 한 마디였다. 당연히 조가 제인의 유혹에 못이겨 키스라던가 그 외의 다른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제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 창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괜히 패트릭 제인이 아니었다.

 

 "난 조가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제인을 보며 조는 속으로 '정말이지...'라며 탄식했다. 진짜로 반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듯한 촉촉히 젖은 페일 블루의 눈동자를 보며 조는 금방이라도 제인을 포옹해버릴 것만 같은 자신을 억제했다.

 

 "제인, 저는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조가 입을 열자 제인은 갑자기 뒤로 돌아 빠르게 자기 집으로 발을 옮겼다. 그에 벙찐 조가 제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뭐하는 겁니까?"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어."

 

 제인이 뒤따라오는 조를 흘낏 보며 말했다.

 

 "여긴 밖이잖아. 이러다가 파파라치한테 사진찍혀서 <CBI 요원들의 은밀한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지역 신문에

게재될 지도 몰라."

 

 농담같은 말이었지만 왠지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 함께 집으로 가는 것이니 적어도 회피는 아니라는 안도 섞인 생각을 하며 조 또한 제인을 따라 제인의 집으로 향했다.

 

*

 

 "차 마실래?"
 "물이면 됩니다."

 

 포트에 물을 끓이는 사이 제인은 유리컵에 냉수를 담아 조에게 내밀었다. 조는 물컵을 받아들고 입술을 축였다. 그새 다 끓은 물을 컵에 붓고 티백을 꺼내 물에 담그며 말했다.

 

 "그니깐 조는 나를..."
 "사랑합니다."

 

 제인의 손이 움찔 했다. 컵을 들고 있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컵을 들고 있었다면 멀쩡한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던 것이다.

 

 "조는 참 솔직하다니깐."

 

 제인은 살짝 굳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조의 까만 눈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조가 말했다.

 

 "제인 상황은 저도 알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달라고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까처럼 장난으로 넘어가진 마십쇼."


 제인은 차를 홀짝 들이키며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조는 인내심을 가지고 제인이 뭔가 말을 하길 기다렸다. 제인은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차만 마시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언제부터야?"
 "그런 게 중요합니까?"

 

 조의 무뚝뚝한 말에 제인은 반대로 그 속의 담긴 진심을 그제서야 체감했다. 겉으로는 전혀 표출되지 않겠지만 조는 이 마음을 자신에게 털어놓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척 긴장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머릿속에 그 자신도 예상치 못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 이는 레드존 사건 이후에 진지한 관계를 피해왔던 제인에게는 그 나름의 큰 도약이었다. 제인은 한 번쯤 충동에 몸을 맡겨 보기로 결심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는 지금 당장 결론을 내려주길 바라는게 아니-"
 "좋아, 조."

 

 조의 말을 가로막은 제인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 번 사귀어 보자, 진지하게."

 

*
 
 다음날 리스본 휘하의 요원들은 모두가 전날의 음주가무로 퀭한 기색이었다. 물론 언제나 상큼한 안색의 패트릭 제인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조도 어젯밤 제인의 집에 들렀다가 자기 집으로 가는 바람에 잠이 부족한지 오늘따라 그늘진 눈가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전날 종료된 케이스만 정리하면 당분간은 맡은 사건이 없으므로 릭스비를 비롯한 팀원들은 서류 정리에 주력했다.
 맡은 보고서를 팀원들 중 가장 먼저 마무리지은 조는 CBI 내의 주방으로 가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다른 팀원들이 서류 작업을 하느라 끙끙대는 동안 전용 소파에서 뒹굴대거나 딴지를 거는데 주력하던 제인은 조가 부엌에 가자 잠시 후에 뒤따라가서 찻잔을 새로 채울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담긴 주전자가 끓자 컵에 물을 붓던 제인에게 조가 말했다.

 

 "제인, 접시 꺼내게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제인은 비키는 대신 뒤돌아서 찬장에 손을 뻗는 조와 마주봤다. 그리고 눈을 찡긋 하더니 조의 귓가에 속삭였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내연애다?"

 

 조가 기습적인 제인의 달콤한 말에 동요하는 사이 제인이 쏙 빠져나가 찻잔을 들고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부엌을 걸어나갔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