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인/레드존제인

 

 

 인간의 망각이란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패트릭 제인에게는 양 쪽 다 해당사항이 있었다. 살해당한 아내와 딸의 얼굴이 곧바로 생각나지 않을 때, 그녀들의 희미한 인상만이 남아서 뇌리를 떠도는 것을 느낄 때 그는 깊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며 다시금 레드존의 자취가 잔류하는 그 방으로 들어가 이제는 거의 느껴지지않는 가족의 혈향을 들이마시며 복수를 되새김질했다.
 CBI의 팀원들과 웃고 떠들며 잡담을 지껄이는 순간 문득 자신의 목적을 떠올리면 바로 직전까지 느끼던 즐거움의 반향으로 더욱 어둡도록 슬프고 비참한 내면으로 침잠했다.
 그때 패트릭의 심연으로 손을 내민 것이 킴벌 조였다. 감히 리스본도 하지 못했던 일을.

 

 "제인은 한숨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잠복근무를 하던-정확히 말하자면 제인이 벌린 일의 해결사 명목으로 동참한-와중에 조가 한 말이었다.
 평소의 차갑고 무표정한 바윗덩이같은 얼굴로 묘한 친절함을 베푸는 그는 생소했다. 릭스비가 반펠트와 헤어진 후에 실연을 위로해주는 친구의 태도를 취했던 그때의 조와는 미묘하게 다른 모습이란 점에서 패트릭 제인은 의아함을 가졌다.

 

 "그건 조가 신경쓸만한 문제가 아닌 것같군...음 조, 전에 선이라던가 본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만났던 아가씨 미인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말 돌리지 마십쇼."

 

 패트릭 제인이 보인 명백한 거부와 거절의 태도, 그리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능숙하게 어색한 상황을 타개하는 용도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조가 갑자기 이렇게 참견을 해대는 이유를 난 모르겠는걸."

 

 능글한 미소의 제인을 향해 찡그린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 하던 조가 갑자기 안전벨트를 풀렀다.

 

 "용의자가 집 밖에 나왔군요."

 

 조가 차 문을 닫으려다 말고 제인에게 당부했다.

 

 "저 자의 움직임이 수상하니 제가 일단 진입하겠습니다. 제인은 차 안에 그대로 계십쇼."

 

 무전기로 지원 요청을 하는 조의 뒷모습을 보며 제인은 좌석 깊숙이로 등을 기대었다. 조는 온몸의 근육을 단단히 긴장한 태세로 용의자의 집으로 향했고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운 밤의 어둠에 조의 실루엣은 순식간에 묻혀버려 제인의 시야에는 더이상 눈에 띠지 않았다.
 제인은 지원 인원과 도착하길 기다리며 아까의 조를 되돌이켜 생각해보았다. 묘하게 애틋한 느낌.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그의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왠지 모를 열기마저 느껴졌던 그의 눈빛.
 헤에, 설마-라고 치부하기에는 제인 자신의 뛰어난 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에 월터 매쉬번과 어울렸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표정이 안좋았던건가.'

 월터 매쉬번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산가 중 하나로 비정상적일 정도로 스릴과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만한 재산을 쌓을 정도의 수완과 인맥도 갖추고 있어 CBI의 수사진을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등의 짓도 가능한 그런 남자였다.
 매쉬번과 어울린 건 버트럼의 부탁도 있었지만 매쉬번 특유의 한계까지 자신을 내모는 모습에 흥미를 느껴서이기도 했다. 하루동안 그의 노리갯감이 되어주는 것은 지루한 내근에서 벗어나는 방편 가운데 하나기도 했다. 가끔 매쉬번과 있다 왔다는 언급을 넌지시 할 때에 조는 제인에게서 나는 매쉬번의 체향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조가 과연 자신에 대한 감정을 자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교차했고, 의외로 빠르게 지원 차량과 요원들이 도착했다. 리스본은 제인이 잠복용 차량 안에 얌전하게 있는것을 보고 재빨리 눈인사만 한 후에 요원들과 함께 용의자의 집으로 향했다.

 사건은 잘 마무리되어가는 듯 하다가 사단이 났다. 먼저 진입했던 조가 거구의 범인과 몸싸움을 하느라 지쳐있던 사이 다른 요원들이 제압했던 범인이 순간적인 괴력을 발휘한 것인지 수갑을 채우기 직전 빠져나가 리스본에게 총탄을 먹인 것이다. 다행히 급하게 쏘는 것이었던지라 조준이 엉망이었고 총알은 리스본의 왼쪽 다리를 스치는 것으로 끝났다. 그래도 명색이 총알인지라 당분간 리스본은 예전에 인파에 밀려 강바닥에 넘어졌을 때처럼 목발 신세를 져야했다.
 리스본은 다리가 아팠지만 수사 진척만 해도 이 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소요했고 체포에도 애를 먹었던 범인을 끝내 잡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기꺼이 케이스 클로즈드 피자를 먹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제인은 파인애플이라면 질색하는 조를 위해(?) 하와이안 피자를 시켜서 반펠트와 함께 조를 편식쟁이라고 놀려댔다. 그렇게 밤은 저물어갔고 잠복 차량에서의 해프닝은 제인과 조 모두에게 잊혀진 것 같았다.

 

*

 

 아픈 리스본을 먼저 집에 데려다 준 후 제인, 조, 릭스비, 반펠트는 2차에서 맥주도 거나하게 마셨고 3차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고 내일의 무사 출근을 바라며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조 너희 집은 이쪽이 아니지 않아?"
 "바래다주고 가도 그렇게 멀진 않습니다."

 

 술자리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댈 때에는 간간히 웃음기를 내비친 조였지만 제인과 단둘이 있게 되자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와버렸다. 천성인건지 CBI의 심문관 역할을 하면서 몸에 밴 것인지 조는 함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침묵을 못견디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제인이야 얼마든지 무시할 수는 있었지만 집까지 가는 내내 이런 분위기라면 정말 사양이라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차 안에서 하던 얘기 마저 해볼까?"
 "됐습니다."
 "왜?"

 

 제인은 빙글빙글 웃으며 조의 앞에 고개를 들이밀며 조의 표정이 풀리길 기다렸지만 조의 굳은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인은 항상 도망치기만 하는 군요."
 "그거야 난 총도 무섭고, 주먹질하는 것도 무섭고-"
 "지금 하는 행동을 말하는 겁니다. 난 제인이 좋지만, 그런 행동은 정말 좋아할 수가-"

 

 멈춰서서 말하는 조를 보던 제인이 갑작스럽게 조의 정면으로 다가와 조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런 거 아니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조의 눈빛을 제인은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안 그래?"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