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인]Love&Peace

2013. 12. 13. 02:09 from Mentalist/단편

조제인/발렌타인기념픽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서 세상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찬다던가 하는 예외는 없었다. CBI는 오늘도 밀려드는 사건으로 바빴고 정시 퇴근은 바랄 수도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발렌타인 데이니 뭐니 해서 치정 사건만 두 배로 늘어난 데다가 바쁜 것은 두 배로 바빴으므로 조는 도대체 발렌타인 데이란 것이 왜 있는 것인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보통은 팀원들의 불평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맡던 리스본마저도 무려 하루동안 세 번째의 출동을 하고 나서는 '발렌타인 데이라면 그놈의 사랑의 힘으로 평화로워진 세상에서는 범죄율이 줄어들어야 정상 아니야? 근데 이게 뭐야!'하고 내뱉을 정도라면 말 다했지.
 최근 들어 CBI사옥의 다락방에서 둥지에 보물이라도 숨겨놓은 까마귀마냥 처박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 제인은 웬일인지 오늘은 분주한 팀원들을 약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살랑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그 후에는 어딜 갔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비밀 사내 커플에다가 슬슬 서로에게 무덤덤해질 때가 된 다년차 커플이라는 조건 하에서 교제를 이어나가다 보니 다른 일반적인 커플들마냥 몇 일 기념일, 몇 년 기념일 운운 하는 기념일 챙기기라거나 낭만적인 이벤트 따위는 멀리한 지 오래된 것이 사실이었으나, 하루종일 커플지옥을 함께 외치던 릭스비가 퇴근하려는 중에 사라가 찾아와서 커플 특유의 닭살돋는 애정행각과 함께 닭털을 사방으로 날려대는 것은 냉정한 남자 조로서도 어딘지 뒷맛이 썼다.
 빨리 집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을 제인과 오랜만에 연인다운 시간을 보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홧병으로 출근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발을 옮기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Agent Cho!"

 

 뒤를 돌아보자 웨이드 요원이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다소 좋지 않게 헤어졌던지라 그녀의 웃음이 의외라고 생각되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는 없었던지라 조는 예의바른 웃음을 띠며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오랜만입니다. CBI엔 어쩐 일이신지?"

 

 단도직입적인 조의 물음에 약간 당황했지만 그 놀람을 금방 극복한 그녀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쪽도 그랬겠지만 이쪽도 오늘 무척이나 바빴거든요. 연계 작업에 대한 서류를 처리하러 왔어요."

 

 그것뿐이라면 굳이 오늘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을텐데요, 라고 받아치려던 조에게 웨이드가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전해드리려고요."

 

 그녀가 내민 것은 포장한 초콜릿 상자였다. 자줏빛 포장지에 금색 리본으로 감싸인 작은 상자를 받아든 조는 이번에는 자신이 당황할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받아든 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혹시-'라고 물으려는데 웨이드가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예요. 걱정마세요.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진지한...의미의 선물은 아니에요."

 

 자신이 정도 이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조가 표정을 풀고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친구에게 주는 발렌타인 초콜릿이죠."

 

 웨이드가 씩 미소지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애인이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뭐 골키퍼가 있다고 해서 골이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짖궂게 농담을 던지는 그녀에게 마지못해 웃음을 띠며 조가 말했다.

 

 "나도 초콜릿을 좀 사둘 걸 그랬습니다."
 "괜찮아요. 이건 뭐랄까...지난번에 제가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내고 간 것같아서, 그에 대한 화해의 표시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그건 제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조는 웨이드의 뒤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낀 릭스비와 사라가 건물을 나서다 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채 입을 벌리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내일이면 웨이드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냐는 둥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설레발을 칠 릭스비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진 조는 빨리 이 자리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웨이드와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파한 조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기 전에 제인을 근처 레스토랑으로라도 데리고 가서 연인다운 최소한의 행위-외식이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빠져 집 안에 불이 온통 켜져 있고 창문도 한두 개 열려 있다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조는 안에 들어가서 난장판이 된 집 안의 광경을 보고 기함을 했다.

 

 "제인!"

 

 그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부엌에서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이 사태를 수습해보려는 발악이겠지만 아쉽게도 조는 제인에게 그럴 시간따위 주지 않고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으로 가까이 가면 갈 수록 탄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느낀 조는 그제야 왜 집안 곳곳의 창문이 열려 있었는지 깨달았다. 탄냄새를 없애려 환기를 한 것이겠지. 제인답지 않게 사려깊은 행동이었다-아니, 이건 제인답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티 안나게 감추려는 지극히 제인다운 행동에 불과했다.

 

 "조오..."

 

 제인이 탄 냄비를 손에 들고 울상을 지으며 뒤로 돌아섰다. 얼마나 부엌에서 악전고투를 치렀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머리칼은 평소와 달리 정리되지 않은 채로 헝클어져 있었고 파란 눈은 살짝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의 꼴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넉넉한 하얀 와이셔츠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웃기는-하지만 몹시 섹시한 차림새에 하반신이 뿌듯해져오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조는 용서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 팔짱을 단단히 끼고 부엌 입구에 기대서서 위압적인 어조로 말했다.

 

 "어쩌다 부엌을 이꼴로 만든 거예요?"

 

 그 와중에도 제인이 들고 있는 냄비에서는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오고 있었다. 제인이 애써 연기를 흩으려 냄비를 흔들며 더듬더듬 말했다.

 

 "초콜릿..."

 

 또 그놈의 초콜릿 타령이란 말인가! 제인이 말을 이었다.

 

 "초콜릿을 녹이려고 했는데...자꾸 냄비 밑바닥부터 타고..."
 "그거 하나만 태운 겁니까?"

 

 제인 또한 나름대로 오랜만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초콜릿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한 모양이었다. 그가 하고 있는 옷차림새-분명 인터넷으로 서툰 독수리 타법으로 더듬더듬 자판을 쳐서 '기념일에 연인을 불타오르게 하는 복장'등을 검색했을 것이 분명했다-에서 그것을 확신한 조는 제인을 꾸짖으려는 생각이 점차 누그러드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도 조는 팔짱을 풀고 제인에게 다가가 그가 들고 있는 냄비를 받아들며 약간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제인은 약간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싱크대를 향해 턱짓을 했다.

 

 "사실 몇 개 더..."

 

 싱크대 안에 가득 들어찬 탄 냄비를 보고 만 조는 화가 누그러들다 말고 다시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길 잃은 아기너구리처럼 불쌍한 표정을 짓는 제인에게 차마 화를 낼 수 없었기에 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일단 가서 창문 좀 닫고 와요."

 

 조가 그를 혼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제인은 안도어린 미소를 만면에 가득 띠고는 활짝 열어둔 창문을 닫으러 걸음을 옮겼다.
 제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는 느슨하게 흘러내린 와이셔츠 밑으로 엉덩이가 보일락말락 하는 것을 잠시 넋 놓고 쳐다보다가 제인이 걸음을 멈추고 엣취, 하고 작게 기침하는 것에 정신을 차렸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제인의 뒤에 대고 조가 소리쳤다.

 

 "그리고 한겨울하고 어울리지 않는 그 옷차림도 어떻게 좀 하고 오십쇼."

 

*

 

 "거 보십쇼. 감기에 걸렸잖아요."

 

 특수부대 시절부터 다진 근육의 힘을 고작 냄비 밑바닥에 눌어붙은 탄 초콜릿을 긁어내고 검댕 자국을 한 점도 남김없이 지우는데에 낭비한 조는 제인을 따뜻한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서 그를 이불로 꽁꽁 감싼 후에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냄비 태운 거야 그렇다 치고, 추운 날씨에 문 오래 열어놓고 있으니 당연히 감기에 걸리는 겁니다. 게다가 옷차림도 그게 뭡니까. 누가 들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잔소리를 하면서도 제인의 손에 손수 만든 핫 초콜릿을 들려주는 조를 제인은 헤헤 웃으며 올려다보았다.

 

 "뭘 잘했다고 웃습니까."

 

 차갑게 쏘아붙이면서도 제인이 앉은 거실 소파 바로 옆에 털썩 주저앉는 조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대며 제인이 말했다.

 

 "그래도 좋았지?"

 "부정할 수는 없군요."

 

 살짝 제인을 외면하며 조가 중얼거리자 제인이 남자들이란, 하며 킥킥거렸다. 그가 웃자 조의 눈초리가 다시금 무서워지는 바람에 제인은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

 

 "초콜릿은 많이 받았어?"

 

 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웨이드 요원이 주더군요."
 "헤에."

 

 기울인 머리로 핫초코를 조심스럽게 홀짝이던 제인이 다시 물었다.

 

 "또?"
 "데스크 여직원 두 명. 그리고는 딱히 없었습니다."
 "흐응."

 

 다 마신 머그컵을 내려놓고 제인이 조에게 더욱 기대며 말했다.

 

 "나도 조한테 초콜릿 주려고 했는데."

 

 미묘하게 질투심이 어린 말에 기분이 좋아진 조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초콜릿을 녹인다 어쩐다 하며 멀쩡한 냄비를 네 개나 망가뜨린 거겠죠. 대체 뭘 만들려고 그렇게 용을 써댄 겁니까?"

 

 조의 물음에 제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딱히 뭘 만들려고 그런건 아니고, 네가 일 끝나고 오면 초콜릿 녹인 걸 가지고-"

 

 제인이 조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하고 녹인 초콜릿을 가지고 두 연인이 할 수 있는 갖가지 일에 대해 속삭이기 시작했다. 귓가에 달착지근하게 와닿는 달콤하디 달콤한 속삭임에 그답지 않게 절로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가 대꾸했다.

 

 "그거 참 아쉽군요."
 "그렇지?"
 "제가 초콜릿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Meh, 그러면 역할을 반대로 하면 되지. 내가 너한테 뿌리고 핥아먹으면 되겠네."

 

 쾌활하게 말하는 제인을 안으며 조가 말했다.

 

 "근데 그거 꼭 초콜릿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슬쩍 제인을 감싼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제인의 허리춤을 향하는 조의 손을 기분좋게 받아들이며 제인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고 말고."

 

 이불이 활짝 젖혀지고 조가 제인을 소파에 쓰러뜨리린 후 키스하기 시작했다. 간만의 키스에 둘 모두 적극적으로 서로를 탐했다. 한동안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길고 긴 키스를 나누면서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숨이 모자랄 지경이 되어서야 둘은 입을 떼고 숨을 들이마셨다.
 조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제인에게 속삭였다.

 

 "외식은 내일 합시다."
 "좋아."
 "그리고 초콜릿 대신 블루베리 머핀이나 잔뜩 사자고요."
 "당연한 말씀을."

 

 제인이 조의 말에 응수하며 이번에는 먼저 조에게 키스했다. 평화롭고 느긋하게 키스를 나누며 조는 생각했다. 발렌타인 데이는 정말 좋은 날인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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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