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큐]땡땡이

2013. 12. 13. 01:45 from ETC/007 Skyfall

본드큐

 

 

 사나운 고양이의 목덜미를 긁어주자 가르랑거리며 얌전해지는 광경에 놀란 것처럼 사무실의 모두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는 동안, 본드가 Q를 바라보며 흐음, 하고 알 수 없는 의미의 신음성을 냈다.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건가 싶어 Q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는데, 본드가 갑자기 책상 위에 벗어놓았던 안경을 집어 들어 Q에게 씌우는 것이 아닌가.

 

 “?!”

 그에 그치지 않고 본드는 또 한 가지 일을 저질렀다.

 “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

 본드가 Q를 공주님처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웃으며 말했다.

 “뭐긴. 땡땡이치러 가는 거지.”
 “때, 땡땡이……!”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로 땡땡이 운운하는 본드의 태도에 넋을 잃은 Q가 당황하여 주춤거리다가 빽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얼른 내려놓으세요!”
 “왜? 그다지 무겁지 않은걸.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운데? 맛있는 걸 먹여서 살을 좀 찌우던가 해야겠군.”
 “제 체중은 제가 알아서 관리할-아,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자리를 비우면 평행 우주 간 정보량 밸런스 관리는 누구더러 하라고 이러시는 겁니까!”

 Q의 항의에 본드는 그야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로 머니페니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머니페니, 뒷일을 부탁해.”
 “물론이죠.”

 시원스럽게 본드의 부탁을 승낙하는 머니페니를 포함하여, 귀엽지만 워커홀릭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상사의 등쌀에 시달려왔던 사무실 식구들은 모두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마치 한통속이 된 것처럼 모두가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이자 Q는 기가 차다는 태도로 뭔가 잔소리를 하려 했으나 본드가 Q의 말을 자르고 능청맞게 말했다.

 “이런, 너도 형님들처럼 땡땡이를 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
  “그럴 필요성 따위 조금도 없습니다!”
 

 Q의 반박은 소용이 없었다. 깡마른 Q가 저항한다고 해서 본드의 품을 벗어나는 것 또한 역시 불가능했다. 그저 얌전히 안겨서 생전 처음으로 업무 중 일탈에 동참하는 수밖에. 물론, Q과 본드의 갑작스런 업무 중단은 ‘임무 수행 중 예기치 못한 대기상황’ 으로 처리될 것이었고 말이다.

 

*

 

 본드에 품에 안겨 버둥거리던 Q는 도착한 장소를 보고는 몸에 힘을 뺐다.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깜박이며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던 Q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긴…….”

 “어때? 마음에 들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Q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의 옥상 테라스였다. 아무도 없는 테라스는 Q의 마음에 쏙 들도록 조용했고, 사무실에 처박혀있느라 언제 보았는지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오랜만에 보는 하늘에서는 쏟아져내리는 맑은 햇빛이 내리비치며 탁 트인 풍경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본드에게서 안겨있던 Q가 그의 팔에서 내려왔다. 넓은 테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둘러보던 Q가 본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래서 굳이 안경을 씌우고 데려오신 거군요?”

 본드는 대답 없이 하하 웃었고, Q는 곧 의자 하나를 골라 앉았다. 그걸 보며 본드가 부드럽게 미소짓자 Q가 물었다.

 “왜 웃는 겁니까?”
 “역시 그 의자를 가장 좋아하는군.”

 본드의 말대로 Q가 고른 그 의자는 이 카페에 올 때마다 Q가 앉곤 하는 의자였다. 적당히 낡아서 안온한 나무 빛깔을 띤데다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낮은 삐걱 소리를 내면서 Q의 몸뚱어리를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의자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에 뺨이 조금 상기된 Q가 톡 쏘았다.

 “용케도 알아차리셨네요.”

 Q의 앙칼진 쏘아붙임에도 본드는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를 의자에 앉힌 후 본드는 한편의 트레이 위에 준비되어 있던 찻잔과 찻주전자를 가져왔고, 테이블 위에 놓인 갖가지 종류의 양철곽 안에 든 찻잎을 은제 스푼으로 퍼내어 능숙하게 차를 우렸다. 총을 쥐고 주먹질을 하는 데에 더욱 익숙할 투박한 손이 여린 다기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능란하게 다루는 것이 어색할 법도 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에 취한 Q는 그 점쯤은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었다.
  곧 향긋한 다향이 퍼졌고, 본드는 Q의 앞에 놓인 찻잔에 주전자를 기울였다. 연한 붉은빛으로 우러난 찻물이 소담한 향기를 풍기며 찻잔에 담겼고 Q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깔끔한 맛과 적절한 농도에 씁쓸함에 줄곧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있던 Q의 인상이 한층 부드럽게 풀어졌다.

 

 “마음에 들어?”

 본드의 물음에 Q가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유능한 요원이시라 그런지 차 끓이는 솜씨도 남다르시군요.”

 불친절한 말투였지만 간접적으로 칭찬을 담고 있는 것이 명백한 그 말에 본드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임무에는 명철하면서 왜 자신 앞에서는 저런 바보같은 표정을 짓는 것일까 하고 Q는 생각했다. 주책맞게 실실대는 본드를 절반은 한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나머지 절반은 왜인지 모를 민망함으로 그를 바라보던 Q는 본드가 시선을 돌려 자신을 쳐다보자 그에게로 고정되어 있던 눈길을 황급히 내렸다. 꼭꼭 숨기고 있던 어떤 감정을 들켜버린 듯해 다시 뺨이 뜨거워졌다.
 한동안 테라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날씨는 유난히 화창했고, 고요한 침묵으로 가라앉은 공기 중으로 홍차의 향기가 기분 좋게 떠돌며 무거운 정적을 완화했다.
 어색한 침묵을 무시하려는 듯 차에만 신경을 집중하던 Q는 이어지는 적막을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순전히 땡땡이나 치려고 절 데려오신 건 아닐 것 같은데, 뭔가 단둘이서만 이야기해야 할 용건이나 청탁이라도 있으십니까?”

 본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그렇게 내 속마음을 파악하려고 머리 아프게 굴 필요는 없다고. 정말로 땡땡이를 치려고 끌고 온 거니까.”
 “그런 것치고는 오늘따라 제 비위를 맞추시려고 무척 애쓰시는 것 같군요. 제가 좋아하는 카페와 의자까지 꿰고 있으신 걸로 봐서 말이지요. 게다가 이 홍차 블렌드도 제가 좋아하는 종류라는 점이 무척이나 수상쩍군요. 저는 제 개인정보를 헨젤과 그레텔의 빵조각마냥 줄줄 흘리고 다니는 타입이 못 되어서요. 누군가가 알려준 게 아닙니까?”

 Q의 날카로운 추궁에 본드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들켰군. 솔직히 말하자면 형님께 물어보았어.”
 “마이크로프트입니까?”

 본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인간, 또 쓸데없는 짓을… 하고 분노로 바르르 떠는 Q를 말리며 본드가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형님들도 다 동생을 생각해서 나한테 이것저것 알려주신 거니까.”
 “절 정말로 아낀다면 그럴 시간에 일이라도 돕는 게 더 바람직한 처사일 텐데요? 안 그래도 요즘 얼마나 엔트로피 급증 현상이 심한데…….”

 투덜거리는 Q에게 본드가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어차피 네가 그렇게 몸을 혹사시켜가며 일하더라도 늘어날 엔트로피는 늘어난다고. 현장 요원인 나도 아는 사실을 Q가 모를 리 없잖아. 그러니까 이럴 때만큼은 마음 놓고 휴식을 즐기는 게 어때?”

 반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선뜻 수긍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 Q에게 본드가 물었다.

 “혹시 아랫사람들이 그렇게도 못미더운 건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러면 Q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려던 Q는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하여튼 제임스 본드와 함께 있으면 도저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다. 까딱 잘못하면 그의 의도대로 말려들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할 자신까지 괜히 느긋해지고 만다. 안될 일이었다.
 게다가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 놓고 휴식을 즐길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같이 있는 게 불편한가?”

 직구로 던져오는 질문에 Q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항상 이렇다. 감정의 징후 따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정상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동요를 겉으로 드러내보이고 만다. 그리고 솔직하게 불편하다고 해버리면 되는데, 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망설이던 Q는 본드가 자신을 응시해오자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다지…….”

 말을 흐리던 Q가 나직하게 말을 맺었다.

 “많이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Q의 대답에 본드가 진정으로 기뻐하는 듯한 미소를 짓자 Q의 뺨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상기된 얼굴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고 있던 Q에게 본드가 언뜻 말을 던졌다.

 “아, 물론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은 용건은 있어.”

 그에 화끈거리던 얼굴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다. 하긴 정말로 Q와 둘이서 한담 따위나 나누려고 이곳까지 끌고 왔을 리는 만무하다. 사업적인 용건 때문이려니 생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Q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뭐죠?”

 본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Q를 향해 다가왔다. 갑작스런 그의 접근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라는 Q의 앞에서 본드는 프러포즈를 하는 사람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Q의 손을 움켜잡았다.

 “이, 이게 무슨……!”
 “Q.”

 본드가 심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Q는 그의 엄숙한 태도에 덩달아 긴장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말은,

 “좋아해. 아니, 사랑해.”

 엄청난 고백에 Q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다시 입을 벌리는 행동을 반복하던 Q는 한참 후에야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간신히 말이라고 할 만한 것을 뱉어낼 수 있었다.

 “……거짓말이죠?”

 여전히 Q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던 본드가 Q의 손을 꼭 붙들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아니. 거짓말도 농담도 내기 같은 것도 아냐. 내 진심이야.”

 확고한 본드의 말에 Q는 다시 한 번 말을 잃었다. 본드는 인내심 있게 Q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그렇지만…….”

 Q가 겨우 입을 열고 중얼거렸다.

 “이제야 겨우 세계 엔트로피가 관리할 만한 수준으로 정착했는데, 정보의 출입을 관리하는 제가 당신하고 교제하게 되면 새로 유입된 밈(Meme)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도 나도 또 철야를…….”

 횡설수설하며 거절인지 응낙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Q에게 본드가 말했다.

 “나와 Q가 사귀는 것만으로도 밈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니, 벌써 밈 걱정을 할 정도로 그렇게나 날 좋아하고 있었던 건가?”
 본드의 말에 Q는 자신이 우회적으로 그동안 그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마음을 고백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손을 내저으며 급하게 변명했다.
 “그건 실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날더러 미녀들과 놀아난다며 나무랐었지.”
 “업무 태도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괜찮아, Q.”

 본드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Q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그 어느 여자들보다도 더 아름다워. 안경알 뒤에 감춰진 에메랄드빛 눈동자도, 초콜릿색의 머리카락도, 무뚝뚝한 말만 뱉어내는 그 조그만 입술도, 매일 똑같은 녹색 야상만 입고 다니는 그 몸도. 심지어 그 허름한 야상과 멋대가리 없는 뿔테 안경도 사랑스러울 지경이야.”

 무지막지한 고백이 퍼부어지는 것에 Q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뭐라고 황급히 말하는 Q의 손을 본드가 부드럽게 끌어당겨 키스했다. 손등에 와 닿은 입술의 감촉에 Q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 살짝 닿은 입술은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것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처럼 그의 입술을 Q의 가냘픈 손등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입술이 전하는 온기가 전염된 것처럼 Q의 뺨도 다시금 연분홍빛 홍조를 띠었다.
  멀리서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Q의 진갈색 머리를 흩트려 놓았다. 손에서 입술을 뗀 본드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고백했다.
 

“I love you, my maj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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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