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실바/본드큐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어요.

 

 Q가 말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듯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에 본드는 피식 웃었지만 그의 말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았다. 본드는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도드라진 쇄골을 검지로 쓸었다. 정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몸은 단순한 접촉에도 쉽게 흥분했다. 역시 젊어서 그런지 Q는 본드의 애무에 금세 달콤한 숨을 흘렸다.
 단조롭지만 세심한 애무를 거듭하며 본드는 Q라는 남자에게는 의외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오늘 그는 Q와 갑작스런 관계를 가지면서 여러 번 놀랐는데, 그 중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Q에게서 발견한 의외의 면모였다. 색기라곤 약에 쓸래도 없을 것만 같던 단정하고 배타적인 태도의 Q였건만, 막상 침대에 눕히자 뭐라 말할 수 없이 묘한 색기를 발산하는 것이 아닌다. 본드가 주는 자극이 유도하는대로 여윈 등줄기를 휘며 높은 소리로 흐느껴 우는 Q의 모습은 매우 선정적이었고 마치 어린 소년을 희롱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산전수전 다 겪어본 본드를 모처럼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다.
 부끄러워하긴 했지만 그다지 내숭을 떨지 않고 솔직하게 쾌감에 응하는 그 모습 또한 무척 사랑스러웠다는 생각을 하며 본드는 애무를 계속했다. 단단한 남자의 손마디가 쇄골에서부터 가슴팍의 유두 근처를 간질간질하게 어루만지자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진 Q가 본드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 마요.

 

 본드는 미련없이 손을 떼었다. 대신 그는 Q에게 무척이나 곤란할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날 좋아했어?
 -그런 거 아니라니깐요.

 

 거듭 부인하는 Q의 모습에 장난기가 솟은 본드는 시트 자락 사이로 드러난 Q의 배를 마구 간지럼 태우면서 언제부터냐고 물었지만 부끄럼을 타는지 Q는 눈에 눈물이 맺힐 지경이 되어도 완강하게 입을 열지 않았다. 간지럼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면서도 Q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본드는 조금 아쉬웠지만 더이상 그에 대해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대신 그와 몸을 섞을 기회가 또 생기면 그때 다시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물론 그때는 물어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소한 듯 보이는 소년같이 가녀린 체구의 몸에서 야한 소리를 뽑아내며 그를 쾌감에 못견디어 엉망으로 울게 해 주리라고 본드는 다짐했다.

 

 -그거 알아요?

 

 Q가 눈가에 배인 눈물을 닦으며 문득 입을 열었다.

 

 -당신이 들른 덕분인지 실바가 더이상 저항하지 않더군요. 일이 한결 편해졌어요.
 -얌전히 포도당 주사를 맞던가?
 -그래요. 대체 어떻게 구슬린 거죠?

 

 본드는 비아냥대는 듯한 뉘앙스로 포도당 주사를 언급했으나 Q는 그러한 뉘앙스를 단순히 본드의 비뚤어진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Q가 떠보듯 말했다.

 

 -역시 그에겐 당신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나 보군요. 우리가 며칠간 아무리 설득해도 그의 의사를 바꾸진 못했는데 말이예요.

 

 본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실바가 의향을 바꾼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생각하면 더욱 모를 일이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본드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지는 것을 Q는 눈치채지 못했다. Q는 계속해서 말했다.

 

 -혼자 힘으론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강력하게 저항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말하는데 본드가 Q의 말에 담긴 이상한 사실을 간파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해 Q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서지도 못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Q는 갑자기 자신을 향해 굳은 표정으로 물어오는 본드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몰랐나요?
 -뭘 말야?
 -자기가 찔러놓고도 몰랐군요.

 

 Q가 속시원히 대답을 하지 않자 본드가 그의 뒷말을 재촉했다. Q는 본드가 실바의 이상을 몰랐다는 것에 대해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으나 본드의 채근에 순순히 대답했다.

 

 -당신이 찔렀던 단도가 미묘하게 심장을 비껴나간 대신 그의 척추 신경 부근을 건드렸어요. 척추 자체에 이상은 없지만 신경이 놀란 것처럼 제대로 신호전달을 못하더군요. 팔다리는 그럭저럭 움직이는 편이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다고 하더군요.

 

 Q의 말에 본드의 안에서 한 가지 의문이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랬군...그래서...

 

 무언가 짚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본드에게 Q가 물었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별 거 아니야.

 

 본드는 대답을 피했다. 집요하게 물어오는 Q의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본드는 되려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버려두어도 상관없는건가? 휠체어에라도 앉혀두어야 나중에 심문하기에 편하지 않겠어?

 

 Q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왜 그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며 그가 본드의 질문에 답했다.

 

 -휠체어 따위는 사치일 뿐이예요. 어차피 말로리가 부임하는 즉시 그는 총살당할 거니까요.

 

 총살. 처음 듣는 말에 본드의 눈이 커졌다. 실바가 총살당한다고?
 Q는 잠시 놀란 표정의 본드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실바는 전임 M의 과오의 집결체이자 과거의 폐습을 상징하는 존재이니까요. 그를 숙청함으로서 M의 잘못을 씻어낸다는 의미부여를 하려는 거겠죠.

 

 관료제 조직은 속죄양 의식을 아주 좋아하니까요, 라고 여린 생김새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듯한 냉정한 말을 잘도 뱉어내는 Q에게 본드가 충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본드가 이제서야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Q가 잔소리를 했다.

 

 -소식에는 깡통이군요. 그러니까 기지에도 자주 오라고요. 이미 다른 요원들도 다 아는 사실을 정작 본드만 모르고 있잖아요. 집에 있어봤자 술이나 마시고 여자나 끌어들일 거면서...

 

 미묘하게 투정이 담긴 어투였으나 실바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버린 본드는 그것을 미처 달래줄 여유가 없었다. 그저 핀트를 돌리려고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한동안 심각한 표정을 하고 허공을 노려보던 본드는 당장 시트를 벗어던지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Q는 본드의 심경이 갑자기 변화한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침대에서 내려간 그가 갑자기 옷을 챙겨입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본드를 만류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본드는 Q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에게 가보아야겠어.
 -가서 뭘 하려고요? 새벽 네 시에-아니 그 이전에, 지난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정곡을 찌르는 Q의 질문에 본드가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지?

 

 Q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동요할 이유가 없잖아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며칠 전에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뭔가 변했다고요.

 

 신랄한 Q의 말을 듣고 있던 본드가 손을 멈췄다. 그가 허탈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뭔가 변했다고?

 -딱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당신이 실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단 건 알 수 있을 정도지요.

 

 Q의 지적에 본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멈춰있던 손이 잠시 후 다시 움직였다. 그나마 구김이 덜 간 수트 팬츠를 주워 입으며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바지를 걸치고 깨끗한 와이셔츠를 찾아 돌아서는 본드에게 뭐라고 하려던 Q가 본드의 보고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잠깐만요, 007.

 

 그를 따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Q가 그의 등 뒤로 다가서 견갑골 부위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뭉툭하게 깎은 손톱이 그새 자라있었던 것인지 관계를 갖던 중에 그의 몸에 상처를 낸 듯 했다. 등 뒤에 피가 비친 자국을 슬쩍 어루만지자 본드가 움찔거렸다. Q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건 내가 낸 상처 같네요.

 

 작게 미안해요, 라고 말한 Q는 더이상 그를 추궁하기를 그만두고 어디선가 구급상자를 꺼내와 연고를 꺼내 그의 등 뒤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 정도 상처에 연고까지 바를 필요는...
 -제 마음이 불편해요.

 

 현장 요원인 본드에게 그까짓 생채기는 별 것 아닌 상처였지만 Q에게는 큰일이었는지 그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 자신이 낸 손톱자국의 발간 선을 따라 연고를 발라주고 있었다.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는 가운데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아 Q가 연고를 다 바르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아까 전의 실바가 총살당한다는 폭탄 선언으로 인해 흥분한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는 것같았다. 조심스럽게 등을 가로지르는 손길이 느껴지길 얼마 후, 다 됐어요, 라고 말하며 본드에게서 몸을 뗀 Q를 본드가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고마워, Q.

 

 본드의 포옹을 받아들이며 Q가 중얼거렸다.

 

 -실바에게 가보았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내가 말려도 당신은 결국엔 갈테니까요. 그렇지요?
 -미안.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텁텁한 향수 냄새의 기척따윈 한 조각도 없는 Q의 순수한 체향을 들이마신다.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떨치려는 듯 그 보드라운 목덜미에 장난스럽게 콧잔등을 비빈 후 본드는 몸을 일으켜 옷을 마저 챙겨입기 시작했다.

 

*

 

 일어설 수조차 없는 그가 달아나는 것을 막겠답시고 지키고 서있는 사람 하나 없는 수감실은 적막 그 자체였다. 철저한 무소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실바는 본드가 들어오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두 팔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열린 문틈으로 본드의 코트자락에 묻어온 찬 새벽공기가 훅 끼쳤다 사그라들었다.
 절도있게 울리던 본드의 구둣굽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가 그의 앞에서 멈추었다. 그새 구강 보조기를 고친 것인지 다시 제 모습을 되찾은 실바는 그럭저럭 멀쩡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선 본드를 맞았다.

 

 -어서 와.

 

 말로는 아무리 멀쩡하다 해도 실바의 안색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확연히 바래 있다는 것을 본드가 모를 리 없었다. 여전히 잠은 제대로 청하지 않는 듯 눈 아래에는 짙게 그늘이 져 있었다. 지금도 새벽 네 시에 졸음기 하나 없이 깨어있었으니 본드가 방문하지 않은 며칠 동안의 생활도 충분히 알 만했다. 초췌한 실바를 마주한 본드는 동정과 연민이 섞인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정작 실바는 그런 것 따윈 개의치 않는지 말끔한 미소를 띠며 그를 바라보았고, 의외로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 그와 마주한 본드는 외려 자신이 수감자인양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초조했다.
 죄의식. 그로 인한 번민.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가책이 그를 괴롭힌 탓일 게다. 살인면허를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마모된 줄 알았던 도덕성의 남은 파편이 그를 찌르는 듯 약한 통증이 그를 성가시게 했다.
 실바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게 말했다.

 

 -바깥 날씨는 어때?

 

 목적 없는 말이 허공을 떠돈다. 본드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실바가 자문자답했다.

 

 -하긴, 이런 곳에 머무르면서 바깥 날씨가 무슨 소용이겠어, 그렇지?

 

 입술을 깨물다 본드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날...저항하지 않았던 까닭이 있었더군.

 

 실바의 농간에 놀아나는 일이 없도록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바는 잠시 눈을 깜짝거리더니 그날 있었던 일은 이미 다 잊어버린 것을 시위하듯 잠시 눈을 굴렸다. 잊을 리가 없는 일을 마치 다 잊었다는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는 척하고 있는 실바가 가증스러운 나머지 본드에게서는 당장에 그를 두들겨패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았다. 그러나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본드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미간을 찡그리기만 했다.
 기다림 끝에 아! 하고 연극적인 감탄성을 터뜨린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척추 때문이었냐고?

 

 딱딱하게 굳은 본드의 입매를 눈만 치켜떠 올려다본 실바가 흐흐 웃었다.

 

 -애송이 너드가 말해줬나보군.

 

 그는 내 쿼터마스터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본드는 실바에 말에 딴죽을 거는 대신 그가 말을 잇길 기다렸다. 본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실바가 눈을 다시 내리깔고 천천히 말했다.

 

 -반항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다고 해두지. 그냥 심정적인 혼란이라고 하면 적당하겠군. 그렇게 하는 편이 좋잖아, 안 그래?

 

 자기자신에 대해 말하면서도 영 확정적이지가 못한 말투였다. 본드는 그런 그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참고 있던 화가 점차 들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그때 있었던 일은...죽기 전 사소한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하지 뭐.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어투의 실바의 말에 본드가 그제야 입을 열어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알고 있었나?

 

 본드를 외면한 채로 실바가 피식 웃었다.

 

 -모를 리가 있나?
 -이유는 알고 있어?
 -몰라.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아.
 -왜지?

 

 악에 받친 듯한 본드의 물음에 실바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화를 내지, 본드?

 

 실바의 물음에 본드는 입을 다물었다. 실바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얼굴에 어린 능청맞은 미소를 볼 때마다 왜 이리도 뜻 모를 분노가 차오르는 것인지는 그 자신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입술이 달라붙기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본드에게 실바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네가 화를 낼 이유는 없잖아?

 

 난 그냥, 죽는 거라고.
 실바가 툭 뱉고는 등 뒤의 벽에 고개를 기댔다. 숨을 토해내듯 나직하게 실바가 말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때가 되면 죽는 것처럼 말이야. 나도 때가 된 거겠지.

 

 맥없이 주절거리는 실바를 분노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본드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조금 진정한 기색으로 실바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본드가 실바에게 속삭였다.

 

 -살고 싶지 않아?

 

 

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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