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홈왓/그라나다크로스오버/미드나잇인파리AU

 

 

 혹시나 모리어티의 잔당이 그를 납치하지나 않았을지, 마이크로프트가 뒤로 손을 써 존을 빼돌린 것이나 아닐지, 그토록 마음을 졸였던 것이 무색하게도 존은 다음날 아침에 멀쩡한 모습으로 플랫에 돌아와있었다. 그 사이에 화가 풀리기라도 한 것인지 존은 어젯밤의 일에 대해서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셜록 또한 존의 화를 돋군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존을 또다시 화나게 하고는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이성적인 사고가 도출한 행동방침과는 반대로 셜록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대체 존이 지난밤에 어딜 갔다온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셜록의 입을 더욱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어젯밤에 막무가내로 나가서 겪었던 고초라던가 셜록의 말버릇에 대해 한마디쯤 해야 마땅할 존이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가 풀렸다면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존이 셜록에 대한 화를 그렇게 금방 풀리가 없다는 거였다!
 게다가 존은 대체 어제 무엇을 하고 왔는지 셜록에게 말 한 마디 붙이지 않고 하루종일 곰곰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추론의 달인인 셜록으로서도 존이 졸곧 뒤지고 있던 1800년대 후반의 역사책과 타임머신에 대한 책의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연관이 되는 것인지 도무지 그 관련성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셜록은 오후가 되어서야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존."

 존은 평소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 하고 반문하며 셜록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무언가를 감추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의 순진한 눈망울에 셜록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존에게 어젯밤의 일에 대해 추궁하듯 캐묻는 것이 당키나 한 일인지 자문하였으나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궁금증은 셜록으로 하여금 입을 열도록 만들었다.


 

 "어제 일 말인데,"

 

 셜록이 막 질문을 하려는데 존이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믿어주지 않을 것같아서 말을 꺼내기가 좀 그렇더라고."

 

 대화의 방향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셜록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다물었다. 일단 존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싶었던 것이다.

 

 "셜록,"


 먼저 말을 꺼내놓고서도 한참을 망설이던 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임 루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셜록의 얼굴에 어린 불신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존이 굴복하는 대신 털어놓은 어제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셜록은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굳어진 셜록의 얼굴을 살피며 존이 더듬더듬 말했다.


 

 "네 생각에도 내가 미친 것같아?"

 

 셜록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러나 존의 말을 막 부인하려는 찰나 어제 마이크로프트가 전화상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돌아오면 존이 너와 더이상 플랫메이트를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할 지도 모른단다.'
 
 간신히 그런 사태만은 막았건만 여기서 또다시 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셜록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가차없는 면박을 간신히 삼키고 비교적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아닐까?"

 

 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야. 어제 플랫을 나가서 먹고 마신 건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랑 냉육을 끼운 크로아상 샌드위치하고 양배추 수프 뿐이라고...내가 돌아왔을 때 넌 이미 다 알아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기껏해야 존이 갈 만한 곳은 모텔이나 펍일뿐이라고 생각했던 셜록은 존이 플랫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존이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파악하고는 이 근처에서는 그런 음식을 대접하는 식당이 없을 텐데, 라고 속으로 약간 놀랐던 것이다.
 어젯밤의 존은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아주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전제-존이 꺼낸 이야기의 현실성을 고려했을때 그 전제가 무척이나 믿기 힘들기는 했지만, 셜록은 자신이 눈으로 확인한 바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하에서 생각의 과정을 진행시키던 셜록은 확인차 다시 한 번 존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만난 자가-"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이었어. 존이란 남자는 미들네임까지 나랑 똑같더라고. 생긴 건 나랑 그렇게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지만 말이야."

 

 골똘하게 생각에 몰두하는 셜록에게 존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혹시 그 사람들이 1898년에 실존했던 사람들 아닐까? 왓슨이란 성은 흔하디 흔하고, 홈즈라는 성은 왓슨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있었던 성씨일 거 아냐."

 

 셜록은 존의 조심스런 가정을 단번에 일축했다.


 

 "성이야 그렇다 쳐도 이름까지 똑같은 사람이 있었으리라고는 영 믿기가 힘드네. 자네 미들네임인 해미쉬까지야 그렇다 쳐도, 셜록이란 이름은 흔하지 않기로 유명하단 말이네. 게다가 자네 말에 따르면 셜록 홈즈라는 자는 탐정이었고 존 왓슨이라는 자는 탐정의 조수이자 전직 군의관인 의사였다면서? 성, 이름, 직업까지 일치하는 과거의 인물이라니..."

 

 아무리 이런저런 가정과 추측을 반복해보아도 존의 말은 그가 겪은 타임 루프가 진짜여야 성립하는 것이었고 셜록은 존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쉽사리 믿어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남는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타임루프라는 개념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인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동안 한 번 겪는 것도 이상한 타임 루프를 또다시 경험할 수 있을 가능성은 요원한 것이었다.

 

 설명하는 존도 설명을 듣는 셜록도 완전히 지쳐서 플랫의 소파에 나란히 나가떨어진 지 오래였다. 중간에 존이 타온 홍차가 담긴 찻주전자도 차갑게 식어 더이상 김을 올리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문득 벽걸이 시계를 바라본 존이 중얼거렸다.


 "어제 딱 이 시간에 플랫을 나갔었는데."

 

 시계바늘은 열두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셜록은 존의 말을 듣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대꾸가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존은 혼잣말을 계속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잠시 울화에 정신이 홰까닥 돌아서 환상을 보았을지도 모르지."

 

 존이 자조섞인 말을 맺은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셜록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며칠째 다림질따윈 하지 않은 구겨진 가운을 걸치고 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있던 셜록이 갑자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운을 벗어던지고 급하게 옷을 챙겨입는 셜록을 의아한 듯 올려다보며 존이 물었다.

 

 "어디 가?"

 

 어느새 자켓과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맨 셜록이 말했다.

 

 "가볼 곳이 있어. 물론 자네도 같이 가는 걸세."

 

*

 셜록이 갑자기 왜 바깥으로 나가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의 성화에 못이겨 점퍼를 챙겨입은 존은 성큼성큼 앞서나가는 셜록의 뒤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갑자기 오밤중에 어딜 가겠다는 거야?"

 

 셜록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어 끼고 존에게도 한 켤레를 던지며 소리쳤다.

 

 "우린 지금 실험을 하러 가는 거라네!"

 

 영문을 알 수 없는 셜록의 말에 존이 무슨 소리야? 하고 되물으려는데 존이 미처 입을 열기 전에 셜록이 먼저 속사포로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같은 실험을 반복했을 때 해당 결과가 오차범위 내로 동일하게 나오게 하려면 실험 조건을 컨트롤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 통제변인이 어제와 같다는 가정 하에 조작변인이라고 보여지는 시간과 장소를 동일하게 조절한다면 어제와 같은 결과가 다시 나올 거라고 보여지는군."

 

 그러면 자네가 어제 제정신이었는지 아닌지도 밝혀지겠지, 하고 농담기를 섞어 중얼거리는 셜록을 째려보며 존이 대답했다.

 

 "문제는 그때 내가 서 있던 장소가 어딘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야. 무작정 걷는다고 해서 수확이 있을지-"
 "뭔가 생각나는 건 없나? 뭐든 좋으니까 말해보게."

 

 셜록의 물음에 존이 하던 말을 멈추고 어제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걷고 있었지. 신호등을 건너려고 기다리지는 않았어. 계속 이쪽으로 걸었던 것 같아. 그리고...아 그렇지, 종이 울렸어!"

 

 존의 말에 따라 장소 범위를 대폭 축소시킨 셜록이 계속해서 물었다.

 

 "빅 벤 말인가?"
 "그래. 이렇게 뒤를 돌아서 보니까 빅 벤이 보였어."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왼쪽으로 돌아보았는지 오른쪽으로 돌아보았는지를 떠올리던 존이 제자리에서 앞뒤좌우로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셜록이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이, 문제의 종이 울렸다.
 어제와 같이 맑은 소리로 울리는 종소리. 셜록과 존은 무의식적으로 종탑을 올려다보았다. 바라보면 그 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듯 멍하니 종탑을 올려다보던 그들은 종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

 

 길고 낮게 귓가를 간지럽히던 종소리의 여운마저 사라진 후에야 그들의 주위를 바라볼 수 있었던 그들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의 런던에서는 좀처럼 볼래야 볼 수 없는 고전적이면서도 허름한 듯한 분위기의 저층의 주택가였다. 다시 말하자면 1888년의 풍경이 그들을 맞이한 것이다.
 설마 했던 일이 또 다시 일어나다니 하고 존이 놀라는 동안 셜록도 아무 말 없이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셜록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먼저 정신을 차린 존이 셜록의 코트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제 어떡하지?"

 

 잠시 그답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이었던 셜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금세 마이페이스로 돌아와 짙게 장난기가 어린 눈동자를 반짝이며 존에게 대답했다.

 

 "'우리' 집으로 가보는 거야."

 

*

 

 "허드슨 부인!"

 

 베이커 가 221B는 한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정숙한 런던 시민이라면 지금쯤 잠에 곯아떨어져야 정상이련만 정숙함의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글러버린 셜록 홈즈와 그의 친우, 그리고 수시로 셜록 홈즈에게 부대끼다 보니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적응이 되어버린 자애로우신 허드슨 부인 또한 홈즈가 시시때때로 그녀를 불러내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한 마디 불평 없이 홈즈의 부름에 답했다.

 

 "또 왜 그러시우?"

 

 말쑥하게 차려입은 홈즈가 우아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따뜻한 스튜라던가, 샌드위치라던가, 뭐든 좋으니 먹을거리를 좀 가져다 주시지요. 2인분이면 족하리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식사를 요구하는 무례한 하숙인의 요청에 허드슨 부인은 자신의 말이 그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교정하는 것에 전혀 소용이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의례적인 불평을 내뱉었다.

 

 "평소에 왓슨 박사님이 아무리 식사를 하라고 권유해도 통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으시더니 대체 무슨 일이우? 어제부터 계속 야참을 찾으시고."
 "제가 먹을 게 아닙니다. 손님이 곧 올거거든요."
 "내 하숙집에 대체 누굴 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홈즈가 손님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던 허드슨 부인이 위긴스를 비롯한 베이커가 특공대를 떠올리고는 그에 버금가는 지저분한 사람이 기껏 말끔하게 청소한 베이커 가의 현관문을 더럽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여 뭐라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찰나 왓슨이 걱정 말라는 듯 허드슨 부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부인. 오늘 방문할 사람은 어제 보셨던 그 사람입니다."

 

 잠시 어제 베이커가를 방문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되짚던 허드슨 부인이 오라, 하고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옷차림이 특이하던 총각 말이군요. 그나저나 그 신사분은 참 선량하게 생기셨던데 방문 시간만큼은 참아주기가 어렵구려. 품행이 영 방정하지가 못한 것 아니우?"


 그 외에도 뭔가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던 허드슨 부인에게 홈즈가 'Mrs. Hudson!'하고 날카롭게 외침으로써 주의를 환기시켰다. 홈즈의 외침에 알았어요 알았어, 하고 계단을 급히 내려가는 허드슨 부인의 뒷모습을 일별하던 왓슨이 문을 닫고 홈즈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홈즈, 정말 그가 올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

 

 한 점 의심의 기색 없이 단언하는 홈즈에게 왓슨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믿기 힘든 그의 이야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가 선뜻 믿어주는 것이 나에겐 더 놀랍군."
 "글쎄, 사실을 따라가면 진실이 결국엔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지. 그 진실이 아무리 말이 되지 않아보여도 진실은 진실이라네. 그리고 난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말이네."

 

 그렇게 말하던 홈즈는 창가를 흘깃 바라보았다. 의미모를 미소를 짓던 홈즈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왓슨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왓슨을 향해 몸을 돌린 홈즈가 손을 뻗어 약간 비뚜름하게 꺾인 왓슨의 타이를 바로잡아주자 왓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곧 손님이 올 거라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듯 아랫층에서 초인종이 성급하게 두어번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왓슨은 또다시 홈즈의 말이 들어맞았다는 것에 놀라 세상에, 하고 중얼거렸고 홈즈는 곧이어 들이닥칠 손님들을 기대하며 입가에 그린 미소를 더욱 진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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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