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존/100제/포비아-자해

 

 그렇게 끝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거진 6개월 간을 지속되어왔던 그들의 기묘한 동거는 끝이 났다. 존과의 한바탕 말다툼 끝에 쫓기듯 호텔방을 빠져나온 짐은 차마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과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겨 그곳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상반된 의지가 대립하여 그는 길 한가운데에서 멈추어 서있다. 정지. 지나치는 인간들의 소음. 귀에 거슬리는 소음의 연속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낸다.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고 나서야, 라이터를 호텔방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이 구실로 그 방에 돌아가면 안될까. 그는 생각한다. 불이 붙지 않은 담배의 필터를 살짝 깨물어 이빨 자국을 내며 그는 생각한다. 생각이란 놈이 아주 긴 시간을 잡아먹는다. 끝나지 않을 정도로 끈질기게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물러나지 않던 생각은 결국에는 끝을 맺는다. 길고 긴 생각의 결과가 보통 그렇듯, 진정으로 의미있는 결론은 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의문을 남길 뿐. 설령 그 방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정사의 흔적이 남은 침대만이 어지럽혀진 채 그대로 남겨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 곳에 함께 뒹굴었던 사람의 온기는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며 체취는 시간이 갈수록 잊혀져 객실 청소부가 시트를 갈러 온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건조한 비누 냄새를 풍기는 시트로 말끔히 갈아입혀질 것이었다. 그리고는 때묻지 않은, 무의 상태, 제로섬,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들의 관계는 망가져버린 채 그대로이겠지만.

 

*

 

 일주일 하고도 이틀 후 짐은 결국 그와 존이 머물던 호텔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상했던 대로 온기 없이 싸늘한 빈 방이 그를 맞이한다. 침대 가장자리에 간신히 걸쳐 있는 구겨진 이불. 정사의 증거물이 곳곳에 남아 차갑게 굳은 채로 남아있는 침대 위. 그날 자신이 허겁지겁 벗겨내었던 존의 샤워 가운도 애벌레의 허물처럼 구깃하게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 침대 옆 협탁 위에는 그날 피우다 만 담배가 재떨이 안에서 끝부분이 꺾여 비벼진 채로 남아있다. 그대로이다. 다만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아니, 그는 차라리 원래부터 없었어야 할 사람.
 천천히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자신의 구둣굽 소리가 방 안에서 생소하게 울린다. 짐은 코트를 벗어 살며시 의자 등걸이에 걸친다. 그리고 몸을 침대 위에 누인다. 원래 남겨져 있던 침대보의 주름이 변형될까 두려워 최대한 느릿하고 천천히 몸을 누인다. 천장을 응시한다. 그동안은 한 번도 천장에 관심을 기울일 까닭이 없었기에 짐이 이 호텔방의 천장을 보기는 처음이다. 단조로운 상아색. 몰개성한 상아색.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진하고 노란 빛을 띤 듯한 그 색은 어떤 이의 머리칼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닮은 색상은 아닌데도, 그저 노란 빛깔의 일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괴롭히고 미치게 하는 것이다.
 눈 앞이 어지러워진 그는 천장에서 눈을 돌린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는 코를 한 번 벌름거린다. 미약하게 남아있는 체향. 애틋하고 그리운... 그는 몸을 돌려 침대 위에 엎드린 후 탐욕스럽게 그 체향을 들이마신다. 그 자신과 존의 체향이 섞인 묘한 향기였다. 스읍, 하고 그가 향기를 들이마셨다.
 그는 죽은 듯이 침대 위에 사지를 늘어뜨린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이 향기에 갇혀 죽을 때까지 누워있고 싶었다. 슬픔과 더한 슬픔과 깊은 슬픔만을 품고 있는 향기.
 짐은 문득 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은 공허하다. 텅 비어있다 못해 그 깊이는 지저 깊은 곳까지 달한다. 음험한 구멍과도 같이 냉기어린 바람줄기를 내뿜는 웃음.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에 놓아두었던 코트를 챙겨서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

 

 멍한 머리. 도무지 이전처럼 돌아가지 않는 무거운 머리를 이고 그가 향한 곳은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베이커 가 221B 였다. 너무나 예측 가능하게도 말이다.
 자신은 존의 자욱을 좇아 이곳까지 왔다.
 다시는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곳으로.
 막상 그 앞에 도착했으나 그는 멍청하게 선 채로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서있던 그는 허드슨 부인의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기다리는 사람도 무엇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고 떠밀리듯 움직였다.

 

*

 

 "...존?"

 

 그는 221B에 있지 않았다. 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처럼 더듬더듬 뒷걸음질쳐, 주인 잃은 삭막한 방이 주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서 문을 닫았다.

 

*

 

 그리고 그는 뛰었다.

 

*

 

 아아,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

 

*

 

 모든 것이 무너지는 파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똑똑하다고 자부했건만 막상 자신에게 닥쳐오는 파멸의 전조는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우매함을 원망하며 그는 확연하게 덜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건물의 옥상과 계단참 사이를 가로막는 철문을 밀었다.
 거짓말처럼 존 왓슨이 서있다.
 맨 처음, 셜록과의 게임을 마무리짓기 위한 한 수로서 그를 납치했을 때와 놀랍도록 똑같은 차림새. 처음과 끝은 맞물린다지만, 이렇게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을 터인데.
 짐은 끼익 소리가 나도록 철문을 열어젖힌다. 그 소리에 존이 뒤를 돌아본다. 아마도 지금 짐이 선글라스로 가린 눈과 똑같을 것이 분명한, 허무감에 찬 두 눈이 그를 응시한다. 짐은 손의 떨림을 억제하며 선글라스를 벗어 가슴팍의 주머니에 넣는다.

 

 "짐."

 

 그의 이름을 발음하는 목소리는 여길 어떻게 찾아왔냐는 듯 당황이나 놀라움에 차 있지도 않았고 들켜버렸다는 체념도 없었으며 슬픔이나 애틋함과 같이 비극적인 감상 단 한조각도 담겨있지 않은 무덤덤 그 자체였다. 짐은 입을 열었다가, 심호흡을 작게 한 번 하고 대답했다.

 

 "그래. 나야."


 셜록이 생의 마지막 숨결을 내뿜었던 마지막 장소에서 둘은 재회한다. 이 무슨 얄궂은 상황인가 싶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당연하고도 탁월한 선택.
 존은 다시 고개를 돌려 짐을 외면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올 줄은 몰랐어."

 

 존의 목소리는 가볍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것마냥 인간의 목소리라면 가져야 하는 감정과 온도가 없이 그저 음절의 조합일 뿐인 음성이다. 그는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잘 뿌리박힌 것처럼 서 있으나 어쩐지 위태한 기색이 그 뒷모습에 배어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짐은 존을 바라본다.

 그는 불현듯 초조해져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다.

 

 "존."

 

 일단은, 이름을 부른다.

 

 "존 왓슨."

 

 존은 무어라 한 마디 말도 없다. 짐이 필사적으로 말을 잇는다.

 

 "내가...미안해."

 

 서 있던 존의 신형이 파르르 떨리는 듯 싶다. 짐은 이렇게 하면 존이 이쪽을 돌아봐주려나, 그 위험스런 건물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이쪽으로 와주려나, 싶어 계속 말한다.

 

 "다 내 잘못이야. 이제 네 말대로 할게. 나쁜 일은 그만둘게. 존, 그러니 제발-"
 "거짓말!"

 

 그가 거칠게 고개를 돌려 짐을 향해 소리쳤다.

 

 "나에게 거짓말하지마!"

 

 순간적으로 크게 소리친 그는 그런 자신에게 놀라 입을 다물고, 짐도 갑작스런 그의 외침에 놀라 뭐라고 더 말하려던 입을 닫았다. 잠시의 휴지 끝에 존은 억제된 음조로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

 

 "이제, 서로에게 거짓말은 그만 하도록 해."

 

 침을 한 번 삼키고, 존이 말했다.

 

 "너는 변하지 않아. 나도 변하지 않아. 너는 네 말마따나, 자문 범죄자이고, 나는 추락한 사기꾼의 조수로...그대로일 거라고. 서로에게 기대할 수 없는 걸 기대한 우리가 잘못한 거라는 걸, 모르겠어?"

 

 존이 가냘픈 목소리로 짐에게 속삭였다.

 

 "거짓으로 덮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똑똑한 너라면 잘 알거야."

 

 존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차분함이 덧씌워진 어조로 말했다.

 

 "우린 그동안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왔어.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연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끝낼 때가 온 것 같아."

 

 선언과도 같이 확고한 어조에 짐이 한 발짝 다가서며 손을 뻗는다.

 

 "존-"
 "더이상 다가오지 마."

 

 존이 짐의 말을 자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짐은 그 말을 무시하고,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간다.

 

 "제발, 존..."

 

 애원하듯 말한다. 그렇게 애원하듯 말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그는 애원하고 있다. 자부심을 넘어산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그가, 존 왓슨이라는 남자의 다음 움직임을 막기 위해 애원한다. 짐은 조심스럽게 존과의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일단 거기서 떨어져."

 

 단단한 시멘트 바닥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인영. 그 위로 익숙한 기억이 오버랩된다. 코트를 입은 키 큰 남자의 실루엣이 금발의 키 작은 남자의 실루엣과 겹쳐진다. 형편없이 깨어져 금이 간 유리가 아슬아슬하게 부서져내리지 않고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깨지기 직전의 금발의 남자는, 네모난 시멘트 건물 꼭대기에서도 끝의 끝 부분에 한 발을 걸쳤다.

 

 "거기서 떨어지란 말야!"

 

 짐이 존의 뒤에서 소리치지만 존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침착하게 남은 한 발을 올린다.

 

 "날, 버리지 마-"
 "잘 있어, 짐."

 

 두 목소리가 한 순간 겹쳐지고, 남자는 아래로-낙하, 추락, 비상...그 어떤 말을 써도 무방한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단절.

 

*

 

 깨어진 유리 조각은 하얗게 비산하며 빛을 흩날린다.

 

*

 

 침묵 속의 비명.

 

*

 

 그래. 그들은 섣불리 가까워져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셜록, 존, 그리고 짐. 그들이 이루고 있었던 삼각의 관계는 마치 숯덩이와 재무더기를 담고 있는 삼발이와도 같아서,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쓰러져 깨지고야 마는 것이었다. 각각의 다리는 연약하나 셋이 모여야만 비로소 삶이라는 것을 영위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셜록이라는 삼발이의 한쪽 다리는 부서져버렸다. 다리 하나가 빠진 삼발이는 무너지면서 남은 다리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잿더미를 쏟아놓는다. 하나의 다리가 무너진 즉시 다른 두 다리도 그 잿더미가 품고 있던 감당할 수 없는 불기운에 불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이루고 있던 삼각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는 이미 한참 전에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그저 그들이 그 사실을 외면하고 허위로 관계가 무너진 잔해를 포장하여 그럴 듯 하게 만들어놓았을 뿐. 존도, 짐도, 셜록이 사실은 살아있을 것임을 믿었다. 눈 앞에서 죽은 자의 죽음마저 불신하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근거도 없이, 모래사장 위에 세운 누각처럼 허황한 믿음. 그러한 믿음을 가졌던 대가는 컸다.
 짐 모리어티는, 아니 한낱 어리석은 남자에 불과한 그 남자는 등줄기를 오그린 채 차오르는 고통을 삼켰다. 허위를 허위로 인식할 수 있게 되자 숨막힐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마치 사실이라는 것이 칼날이 되어 그의 손목을 가르고 안의 동맥을 가르고 그의 차갑기 그지없는 생명을 담고 있는 뜨거운 피를 쉴 새없이 흘려내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서 그저 인내할 수밖에 없는 류의 고통이었다. 후...후후. 바람 빠지는 듯 짐이 웃었다. 자초한 것이었다. 스스로의 손목이 끊겨나가는 듯한 고통을 인내하며 짐은 더러운 침대 위에 누워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웃었다. 한동안 그렇게.


 침대가 뜨끈한 무언가에 젖어 붉게 물들어가는가? 침대 위 남자의 손목은 피를 흘리어 창백해졌는가? 그 무엇도 확실치 않다. 진실이란 것은 본래 확실치 않은 것이므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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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